윤석열 지명, 검찰 내부의 평가와 어떤 이펙트를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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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지명, 검찰 내부의 평가는 어떨까요?? 또 검찰내부에 어떤 이펙트를 줄까요?? 검찰시절 날라리 검사. 인물정보는 여기저기 들을 곳이 많은 날라리 검사에 들어야한다고 김어준은 운을 뗐습니다. 부장검사 출신(검사장은 하지 못한)인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이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나와서 코멘트 한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Q. 윤석열 검사는 어떤 인물일까요?

A. 윤석열 검사는 특수수사에 아마도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여러가지 큰 굵직한 사건을 많이 했습니다. 초임때부터 '윤검사에게 맞겨놓으면 수사를 잘한다' 라는 평가를 받았고 특수부라던지 중수부라던지 계속 맡은 일마다 잘 했기 때문에 검찰총장 지명까지 받았습니다. 검사내부에서는 실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고 실력도 있지만 술과 밥을 잘 산다는 우스개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윤석열 검사장은 '총각대장'이라고 52살땐가 그 때 결혼을 했습니다. 재혼이 아니라 초혼으로. 총각검사들 라인이 있는데 그 중에 나이가 제일 많다고해서 총각대장 총장으로 불리웠습니다. 결혼할 때 보니가 통장에 2천만원 밖에 없었다고합니다. (후배를 보면 밥사고 술사는겁니다. 막산거로 보면된다고)

검사들은 일을 열심히 합니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라도 일은 열심히 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기때문에 야근을 늦게까지 하거나 주말에 자주 나오거나 합니다. 검사 말고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파견검찰, 일반 검찰직원이 많다고) 챙겨먹이려면 자기 돈을 털어야 합니다. 따로 지원되는 돈이 없습니다.

52살에 결혼을 했는데 부인이 재산가입니다. 이게 왠 대박인가? 부인이 더구나 미인이고 재산도 많다고 합니다. 뭔 일이 잘 풀리려면 풀린다고. 문제는 뭐냐면 결혼하고 나서 얼마있다 나서 사고가 터졌습니다. 댓글수사 관련해서.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사건을 중앙지검 특수1부장 때 (결혼후 6개월 지나서 쯤) 했는데 그 때의 일로 좌천된 일이 있습니다.

결혼이 복이 된건지 화가 된건지 모르겠으나 결혼하고 나서 얼마있다가 중앙지검의 특수1부장으로 갔습니다. 당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됐기 때문에 특수1부장으로 갔습니다. 채동욱이 윤검사를 아꼈다고 합니다. 박용수 중수부장이 있을 때 수사기획관을 채동욱이 했고 대검 연구관으로 윤석열이 같은 팀으로써 같이 수사를 해서 세 명이 인연이 엮여서 채동욱이 검찰총장이 된 후 윤석열을 찍어논 것입니다. 그래서 댓글수사를 맞긴것입니다.

국정원 일은 특수부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안부 사건입니다. 그런데 채동욱 검찰총장이 보니 이사건을 공안부에 떤져줘서는 일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 건은 윤석열에게 맞기자 해서 공안부, 특수부를 묶어서 팀을 만들어 특수1부장에 윤석열, 박현철 당시 공안3부 공공형사부 부장을 한 팀을 묶어 만들었습니다.

사건을 너무 열심히 해서 하다보니 청와대라던지, 당시 법무부장관(황교안) 쪽하고 마찰이 생겼습니다. 원래 특수부장이 수사를 하면 1,2,3차장 중 3차장이 지휘를 해야하는데 법무부 2차장에게서 지휘를 하게했습니다. 당시 이모차장의 말이 잘 안먹혔습니다. 윤석열 특수부장이 보기에는 택도없는 상황으로 여기고 수사를 했습니다.

박현철 공공 형사부장 같은 경우도 어떻게 보면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수제자, 동기생되는 정도로 공안의 대가입니다. 그렇게 둘을 묶어놓으면 잘 될 줄 알았는데 박현철마저 변심을 해서 윤석열과 한 팀이 되어버려 장관이 뭐라해도 안 듣는 상황이 됐습니다. (하지 말라해도 계속 수사 진행) 2차장이 암만 지휘를 내려도 수사팀에서는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체포영장 청구도 하고 원세훈 국정원장 영장청구도 몇 번을 올렸다고 합니다. 올려놓고 보면 보름동안 답이 없고, 또 올려도 답이없기를 두 달 동안 끌었다고 합니다.

타협점이 된 것이 일단 불구속기소를 하는 것으로 무마가 되서 기소를 했는데 또 문제가 됐던건 죄목을 뭐로 할것인가? 였습니다. 국정원에서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국정원법위반으로만 할것이냐, 대선에 문제가 될 수있는 공직선거법위반으로 할것이냐 까지 논란이 붙었습니다. 일단은 예민한 부분 다 빼고 기소를 일단 해놓고 나서, 마지막에 윤석열 당시 중수부장이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모르게 공소장 변경을 한 것입니다. 모르게 도장을 딱 찍어 법원에 보내놓고 배째라 나온 것입니다.

그 일이 있은 뒤에 윤석열은 수사팀에서 빠지게 되고 지청장으로 보내졌습니다. 남아있는 팀원들은 자기 대장이 눈으로 날라간것을 본게된 것입니다. 남은 검사들은 나중에 무죄 나면 다 죽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무죄나면 다 옷벗어야 한다. 1심, 2심 꼭 유죄를 받아야만이 우리 목을 붙일 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런 현실적 일념으로 더더욱 공소유지에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이였습니다.


Q. 이것이 뒷이야기이고 그렇게 해서 윤검사가 좌천됐다고 표현되는 지방 고등검찰청. 이게 왜 좌천인가요?

A. 여주지청장을 하다 대구고검하고 대전고검을 하는데,  고검은 수사권이 없습니다. 수사를 하지 않는 부서고 다른 사람을 수사를 해놓은 것이 잘 됐는지 못 했는지 검토를 하는 곳입니다. 검사는 칼이 없으면 힘이 없는것입니다. 힘 없는 부서로 보내논 것입니다. 그것도 대구로. 그렇게 보내놓고 수사를 잘 하고 있는지 자주 둘러봐야 하는데 멀리 있으면 가서 보지 못합니다. 주말에만 볼 수 있을까요. 대구고검에서 1년, 대전고검에서 1년을 지냈습니다. 이거는 옷 벗고 나가라는 소리입니다. 한 번 고검을 가게되면 1년 버티면 다시 기회가 올까 생각하는데 2번을 고검을 가게 되면 "옷을 벗을까, 평생 고검검사로 되서 살까"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윤검사는 끝까지 옷안벗고 버티겠다 생각했고 버텼습니다.

그 후 2016년 시절 국정농단사건에 참여합니다. 박영수 특검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하는게 특검보를 선정합니다. 그런데 특검보보다 파견검사를 먼저 정했습니다.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박특검은 첫번째로 윤석열을 불러서 여기와서 일좀하라고 물어봤고 수사팀이 꾸려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 윤검사는 머리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있었을것이라고.)

당시에는 그 주인이 청와대 현재 앉아있던 상태. 그런 상태에서 밝혀내야 한다는 굉장이 어려운 사건입니다. 그 때는 박근혜 정권이 유지되고 있을 때입니다. 탄핵 이후하고 탄핵 전과는 수사상황이 다릅니다. 그 당시에는 수사를 하다가 안 되면 정말 사표를 내야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 때 대통령권한대행이 황교안이였고 특검연장 안해줬습니다. 특검하다가 멈췄습니다. 탄핵되기 전이였고 탄핵이 기각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때였고, 특검이 어려운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Q. 윤석열지검장이 기수를 뛰어넘어서 검찰총장 지정 된것이 검찰 내부에서 어떤 임팩트가 될것인가요?

A. 윤검사장이 5기수를 넘어서 된 것입니다. 검찰 조직을 보면 검찰총장, 고검장들, 검사장들. 이렇게 되있는데 예전을 따지면 상당히 기수가 낮아진것이고, 문 총장이 18기기 때문에 18~21기까지는 거의 기회가 없습니다. 슬픈 사람은 10명정도 되고 기쁜사람은 100명정도 될 것입니다.

23기나 22기 중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남아야 될 것입니다. 검찰총장이 나이가 10살이나 많기 때문에 남아도 됩니다. 기수가 역전되거나 하면 학번이 헷갈리거나 나이가 헷갈리는 문제가 되는데 여기는 전혀 그럴게 없습니다. 22기, 23기 정도는 같이 검찰의 주요일들을 나눠서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관심사는 지금 총장을 하느냐, 2년 후에 할거냐. 였는데 지금 하기로 대통령이 결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금 시점이 윤석열이 검찰총장으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아직 남아있는 국정농단 수사라던지 적폐청산 수사를 뒷마무리 깔끔이 잘해야할 것이고, 지금 검찰이 욕을 많이 먹어 있는데 국민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검찰의 혁신, 쇄신,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데 그런 것을 떠맡아 줄 사람을 윤석열 검사장을 적임자로 보고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번에 네 명이 후보로 올랐는데 세 명은 법조인들, 전 검찰총장들이 추천을 한 것이고 윤석열은 시민단체에서 추천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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